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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28일 아침 Q.T(성경: 에스라 1-5장)

<에스더 3:3-4>

[3]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4]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전하였더라


<말씀묵상>

인생을 살면서 감당하기 힘든 문제가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 문제는 자칫 우리의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고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르드개와 하만입니다. 두 인물을 통해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는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을 때 왕의 신하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4절). 왕의 신하들은 모르드개의 동료들이었습니다. 잘못하면 그가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르드개에게 절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의 확고한 의지는 동료들의 권면도 소용없었습니다. 오히려 모르드개는 “나는 유대인이다”(4절)라고 선언합니다. 이 선언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자신이 왕의 신하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모릎을 꿇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또 그리스도인인 것을 숨겨버릴 때가 있습니다. 잘못하면 손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절하고 얼마든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절해야 할 대상이 하나님 한 분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의 자세는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한 복판에서 “나는 그리스도인이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죄의 자리에서, 유혹의 자리에서, 손해의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력해 지는 것입니다.

왕의 신하들은 모르드개의 단호한 모습을 보고 더이상 하만에게 절하라고 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태도를 바꿔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4절)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을 하만에게 보고했습니다(6절). 그들의 고발을 듣기 전까지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분노를 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를 죽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페르시아 전역에 있는 유대인들을 모조리 죽이려고 계획했습니다(6절). 하만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모르드개에 대한 사적인 분노를 그가 속한 민족 전체에 분풀이 하려는 지나친 이기심과 야비함, 그리고 한 민족을 쓸어버리려는 잔인함과 오만함입니다. 한 사람의 분노는 그 공동체 전체에 긴장과 두려움이 드리워지게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하만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하만보다 더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입니다. 하만은 바로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만처럼 페르시아 제국의 총리, 왕의 대신으로 있다면 우리는 과연 하만과 같이 행동하지 않을 것 같습니까? 속으로는 몇번이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괜찮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카일 아이들만이 쓴 “은혜가 더 크다”는 책에서 “당신이 아는 가장 큰 죄인이 당신이 아니라면 당신은 자신을 잘 모르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말에 자신은 “그래 맞아. 난 죄인이야. 사실 나는 큰 죄인이야. 하지만 내가 아는 가장 큰 죄인은 아니야”라고 반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바울은 죄인임을 고백할 때마다, 자신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냥 죄인이 아니라 괴수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까 자신만큼 큰 죄인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믿음은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분노, 이기심, 야비함, 잔인함과 오만함. 하만의 자리에 있으면 하만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 할 수 없는 죄인 중에 괴수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성품을 구해야 합니다.


<적용>

1)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합니까? 혹시 그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있거나 숨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2)나는 내 감정대로 행동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성품으로 행동하는 사람입니까?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문제 앞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모르드개가 문제 앞에서도 “나는 유대인이다”라고 선언했듯 우리도 그렇게 선언할 수 있게 하시고, 믿음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또 여전히 분노하고, 화내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 이기심, 야비함, 잔인함과 오만함. 다 사라지게 하시고, 나의 성품을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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