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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13일 아침 Q.T(성경: 역대하 18-20장)

<역대하 18:28-29>

[28]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29]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 왕이 변장하고 둘이 전쟁터로 들어가니라


<말씀묵상>

몇 사람은 평생 속일 수 있고, 또 잠시 동안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으나, 평생 모든 사람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눈은 잠시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상황을 감찰하시며 죄를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사밧과 아합이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은 선한 왕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입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그들은 서로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아합은 함께 아람을 치자고 제안합니다. 결국 여호사밧은 이 전쟁에 휘말려 큰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여호사밧은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이 전쟁에 대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묻자고 했습니다. 아합은 이스라엘의 선지자 400명을 불러모아 예언을 하게 합니다. 그때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왕이 원하는 말을 합니다. 그 대답은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4-5절). 400명이 한결같이 아합의 승리를 예언하는 장면은 아주 감동적이었을 것입니다. 거짓 예언이었지만 아합은 자신감과 확신에 차게 됩니다. 우리는 내가 듣기에 편안한 말만 들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나의 생각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 많을 수록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감과 확신을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나를 교묘히 속여 진리와 진실을 놓치게 하고, 때로는 주변 사람들까지 그렇게 만들어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케 하고 진노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한편 여호사밧은 400명의 선지자들이 하는 예언에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합에게 한번 더 듣자고 합니다. 그래서 아합은 미가야에게 묻자고 했습니다(6절). 미가야는 아합의 자신감과 확신에 찬물을 껸지듯, 그들은 이 전쟁에서 패하고 아합은 전사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18-22절). 여호사밧은 이것은 잘못된 일임을 직감했지만, 아합은 분노하여 미가야를 감옥에 가둡니다(26절). 진실과 거짓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순간입니다. 결국 여호사밧과 아합은 전쟁에 나서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아삽이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자기 왕복을 입게 하고 자신은 왕이 아닌 것처럼 변장을 했습니다(28-29절). 400대 1. 확신을 가질만큼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비록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능력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아합은 불안했을까요? 거짓은 항상 불안한 법입니다. 아합은 막상 전쟁에 나가려니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공격이 여호사밧에게 집중되게 하고, 자신은 일반 병사처럼 보여 죽음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의 계획은 동맹조차 속이는 속임수였습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적중했습니다. 아람 왕은 병사들에게 이스라엘 왕을 찾아 그하고만 싸우라고 했습니다(30절). 적의 왕을 쳐서 전투를 신속하게 끝낼 계획이었습니다. 아람의 병사들은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인줄 알고 달려들었습니다. 이 순간만 보면 아합의 계획은 거의 성공을 거두는 것 같습니다. 아람의 병사들은 여호사밧을 점점 포위하며 조여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구해 달라고 소리를 질렀고, 하나님은 그를 도와 아람의 병사들을 물러가게 하셨서 위기에서 구해주신 것입니다(31절).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적들이 여호사밧을 죽이기 위해 조여오는 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보호하시고 품어주신 것입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감동시키다”(히브리어 “쑤트”-선동하다)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적들을 부추겨서 여호사밧으로부터 떨어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위기에 빠진 여호사밧을 구해준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 못지 않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과 속임수로 일관한 아합의 비참한 죽음입니다. 거짓과 속임수는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일 뿐입니다. 아합은 자신의 계획대로 될 줄로 생각했지만 그 결과는 비참한 죽음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무심코 쏜 활에 맞아 죽은 것입니다(33-34절). 무심코라는 말은 우연을 강조하는듯 하지만 성도에게는 결코 우연은 없습니다. 미가야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아합은 죽어가면서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을까요? 그의 완벽한 속임수가 떠올랐을까요? 거짓과 속임수는 후회뿐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도는 거짓과 속임수가 아닌 진리를 붙들고 진실을 붙드는 사람들입니다.


<적용>

1)나는 내가 듣기 좋아하는 말만 들으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사람의 말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듭시다.

2)거짓과 속임수는 나를 교묘히 속여 진리와 진실을 놓치게 하고, 때로는 주변 사람들까지 그렇게 만들어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케 하고 진노케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경계합시다.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내 안에 내가 듣기 좋아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는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럴수록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내 속에 있는 거짓과 속임수, 합리화를 성령의 불로 태워주시고, 오직 진리와 신실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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