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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12일 아침 Q.T(성경: 역대하 13-17장)

<역대하 13:14-15>

[14]유다 사람이 뒤를 돌아보고 자기 앞 뒤의 적병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부니라

[15]유다 사람이 소리 지르매 유다 사람이 소리 지를 때에 하나님이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앞에서 치시니


<말씀묵상>

역대하의 두 번째 장면은 솔로몬 이후 분열 왕국 전반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에서 본 것처럼 남북 분열 후 초기 40년 동안은 이스라엘과 유다 사이에 전쟁이 심했고, 이 적대 관계는 여호사밧이 아합과 화친하여 사돈을 맺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 속에서 주목해서 봐야 하는 것은 분열 왕국 초기의 유다 왕들은 비록 완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겸비했고, 또 하나님을 찾고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과 평강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왕들과 유다 왕들의 차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주하는 왕은 아비야입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열왕기상에 나오는데, 아버지 르호보암처럼 악한 왕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여로보암과 아비야 사이에 있었던 남북 전쟁을 자세하게 묘사하면서 승리로 이끈 아비야를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역대기 기자는 그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요?


1)누가 더 우세한가?

아비야는 전쟁을 앞두고 군사를 총 동원해 40만 명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의 군사는 무려 두배 많은 80만 명이었습니다(3절). 이 전쟁은 애초에 유다가 이스라엘과 전투해서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여로보암은 전술에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13절에 보면, 그는 많은 군사를 이용해 매복 작전을 펼쳤습니다.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유다 군사들의 배후에 매복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유다 군사들은 앞뒤로 포위된 형국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문제 앞에서 힘의 논리로 싸우려고 합니다. 힘이 더 쌔야 이기기 때문에 더 좋은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더 큰 힘을 가지려고 노력해도 항상 우리가 가진 힘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누가 더 우세한가?의 싸움에서 힘의 논리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성도는 힘의 논리가 아닌 믿음의 논리로 싸워야 합니다. 성경에는 오합지졸인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보다 훨씬 강하고 숫자도 많은 적 앞에서 승리하는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전쟁의 승패는 군사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삼상 14:6). 그러므로 승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2)믿음의 논리는 무엇인가?

역대기 기자는 아비야의 모습에서 믿음의 논리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아비야는 전쟁에 앞서 적군을 향해 연설을 합니다(4-12절). 그 요지는 이스라엘이 유다와 싸우는 것은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시 유다는 부족하지만 여호와의 신앙을 유지하고 있었던 반면, 이스라엘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쫓아내고 이방인들을 제사장으로 세워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두 나라가 하나님 앞에 연약하고 죄를 범했지만, 유다와 달리 이스라엘의 신앙은 완전히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아비야가 비록 선왕 왕으로 평가 받지는 못하지만 그 속에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과 성전이 갖는 중요성을 붙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싸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그 싸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여호와냐 바알이냐”의 싸움, 즉 누가 주인인가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비록 연약하여 죄를 범하기도 하고, 넘어지는 존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붙들고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3)누가 승리하는가?

유다는 이스라엘의 전략으로 인해 앞뒤로 둘러싸여 포위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은 어쩌면 거의 공황상태에 빠질만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사면초가에 빠진 유다는 어떻게 합니까? “여호와께 부르짖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부니라” 이는 율법의 가르침이었습니다(민 10:9). 그때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의 군사를 치시고 유다를 승리케 하셨습니다. 여로보암의 군사 중 50만 명이 죽었고, 나머지는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도 더이상 재기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역대기 기자는 유다가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결론내립니다. 18절에 보면,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항복하고 유다 자손이 이겼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 객관적으로 약세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딱 봐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승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완벽하면 더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살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비야처럼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죄를 범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잃어버리고, 변질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비록 그런 죄인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앙만큼은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평생 누가 주인인가의 싸움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 전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며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무리 약할지라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1)나는 문제 앞에서 어떻게 반응합니까?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의지합니까?

2)나의 믿음의 논리는 무엇입니까? 약할 때 강함되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나는 완전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완전합니다. 그러니 나는 늘 연약하여 넘어지고 실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내가 되게 하옵소서. 그런 믿음을 오늘도 승리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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